21C 피그말리온




마음만 먹는다면 그는 무엇이든 훔칠 수 있었다. 빛나는 재기, 세심한 배려, 너그러움과 온화함, 우아함, 재치,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깊이, 허무한 쓸쓸함의 달콤쌉싸름함, 차가운 카리스마에 이르기까지, 매력적이고 반짝이는 것들을. 그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조각들을 훔쳐내어 새벽이 지나도록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곤 했다. 
어느날 이 반짝이는 것들을 한 데 모으면 얼마나 굉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여 완벽하게 만들어진 빈 육체를 구하고,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품성의 조각들을 섬세하게 장착해 넣기 시작했다. 인간은, 들여다보면 누구의 안에서나 작은 반짝임을 볼 수 있다. 이 사람에게서는 인정, 저 사람에게서는 지성 하는 식으로. 많은 종류의 반짝임을 한꺼번에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갖고 있는 그것이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여 많은 이를 눈멀고 목마르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무튼 한계는 있었다. 완벽에 가까운 문장을 구사하지만 옆에 있는 타인은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 천상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금전감각이 없는 사람, 주위사람들을 잘 배려하지만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그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분야에서 그처럼 빛나면서도 왜 다른 분야에서는 그토록 어처구니없도록 엉망일 수 있는 걸까. 그런 단점들때문에 그가 사랑하는 재능마저 바래보이는 느낌은 정말 허무하고 화나는 것이었다.
빈 육체에 그가 수집한 조각들을 정성스럽게 채워넣으며 그는, 단점따위는 하나도 넣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완벽에 가까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순간부터 문제가 생겼다. 어떤 조각들은 영 속성이 맞지를 않는 것이다. 털털하고 꾸밈없는 성품과 우아함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받지도 않으려는 예민함과 푸짐한 배려가 서로 반발했다. 맞지 않는 조각들을 억지로 맞춰넣으려던 그는 결국 지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실 이 모든게 한번에 들어갈리가 없잖아. 속성이 비슷한 것들을 선별해서 넣어야겠군. 물론 그렇다고 사양을 낮추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그는 요소들을 세심하게 점검했고 매칭율이 높은 것들 중에서도 최고급의 조각들을 골라냈다.
모든 조각은 몇번이고 점검하여 적당한 크기로 조절해놓았다. 배려가 지나쳐 오지랖이 되거나 침착함이 지나쳐 냉정함이 되지 않도록. 살짝 글루미한 매력이 지나쳐 찌질함이 되지 않도록.
애쓴 끝에 훌륭한 인간이 완성되었다. 그것을 이루는 요소는 어떤 것이든 빛나는 조각들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부족한 것은 없을 텐데도 깊이 역시 없었다.
빛나는 것들 뿐이었는데도 어쩐지 평범했다.
그는 손대고 손대고 수백번 수천번을 계속하여 고쳤고,
단점과 장점은 같은 뿌리에서 자라나며, 단점을 완전히 거세한 장점이란 거의 존재시키기 힘들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의욕과 자포자기가 뒤섞이고 몇천번의 수정이 반복되면서 그 과정은 오히려 점점 그의 취향을 반영해갔다.
덜 반짝인대도 좀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정말 싫은 단점을 동반한 장점이라면 아무리 반짝여도 미련없이 버렸다.
결국 그의 피조물은, 더이상 무엇을 어떻게 손대야 할 지 알 수 없는, 완성은 아니지만 완성 비슷한 상태에 도달했다.
마지막에 그것은, 그 자신보다 조금 나은- 그러나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by khai | 2007/04/12 17:53 | 내꺼(쓰기) | 트랙백(1)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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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달콤담백한 기억은 72% at 2008/08/10 01:44

제목 : 21C Pygmalion
예전에 썼던 21C 피그말리온을 미루님이 번역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ㅠㅠㅠ제가 영어 못하는건 저의 지인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그래도 최근 일년 사이에이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는 영어를 공부했어요~~다행~~진짜, 공부한 보람이 있지 말입니다...(뿌듯뿌듯 ㅠㅠ) <-아...쓰다보니 쫌 창피한것도 같지만 사실이니 걍 씁니..;;;;훗;;;미루님께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짜 기뻤어요.>_<;;들러주시는 분들......more

Commented by 민트쵸코 at 2007/04/12 20:56
자신의 이상형은 자신인거야.ㅠ_ㅠ?
Commented by remlin at 2007/04/12 23:08
카이님의 글인가요? 아니면 출처가 어디? 궁금합니다. 반짝거림은 결국 평범 속에 숨어있어야 진정한 반짝임인 것을...
Commented by khai at 2007/04/12 23:25
민또/ 글쎄 이 결론이 꼭 답인건 아니지만...누구든 결국은 세상에 널려있는 수많은 것들을 자기 취향에 따라 선별적으로 카피한 끝에 지금같은 인격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적은 있당;;

remlin님/ 제가 쓴거에요 ㅎㅎ; 별로 어떤 확실한 명제를 의식하거나 주장하고 싶어서 쓴 건 아니에요^^
Commented at 2007/04/13 00: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jandy at 2007/04/13 00:52
헉! 글을 읽다보니 불현듯 p모 게임이 생각나는 것이....
체력이 상승하였습니다 but 지력이 하락하였습니다
도덕성이 하락하였습니다 but 매력(;)이 상승하였습니다(어째서?!!)
세삼 현실적으로 여왕(완벽한 인간)에 이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듯 하네요^^;;
Commented by 곰입니다 at 2007/04/13 02:15
자신이란거 아무리 모자르고 찌질하다고 생각해도 이건 막연한생각인거고 세상에서 가장 바른건 자기자신인거니까. 하지만 외모의 경우엔ㅋㅋ 자신보다 훨씬~훨씬멋진것을 만들수...*ㅜ*
Commented by khai at 2007/04/13 11:13
비공개님/ 옙! 시험 힘내세요~~ 저는 놀궁리반 원고반 ㅜㅜ 그래도 어케 담주안엔 끝내야죠..;;

잔디님/ 게임에 사실은 인생의 진리가 들어있는거에요;; 살다보면 p모게임이랑 m비노기 시스템 생각나는 일이 진짜 많더라고요 쿨럭... 그나마 p모게임은 에디터가 있는데.^^;;;

곰언니/ 정곡을 찌르는 문장! 그래서 정말 누구든 언제나 자신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죠?
외모의 경우는 우하하....저도 시켜만 준다면 진짜 훨씬훨씬 멋진걸 만들텐데...^^;;;;
Commented by 민트쵸코 at 2007/04/13 14:05
늘 생각하는거지만 세상에 객관적인 시선따위 사실 존재하지 않잖앙~
자신의 이상형은 조금 더 발전한 자신인걸까'-'

근데 닮은 사람만나면 괴롭다 ㅎㅎ
Commented by remlin at 2007/04/13 17:28
저, 이 글을 바탕으로 에스프리 형식의 원고 하나 하실 생각은?
카이님의 이런 글, 저, 정말 좋아요~^^
Commented by khai at 2007/04/15 20:19
민또/ 닮은사람...흐흐^^ 왜그럴까 비슷한 조각으로는 凹凸을 못맞춰서 그럴까?
인간으로써의 이상형과 친구로써의 이상형 배우자로써의 이상형은 다 미묘하게 다른거 같기도...

remlin님/ 이런걸 글로 써본건 거의 처음인데, 마음에 드셨다면 기쁜데요^^
그런데 원고로 표현하기에는 힘들것 같아요;; 언젠가~ 괜찮은 연출이 생각나면 그려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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